[주일설교, 2020.09.13, 김진영 담임목사] 20년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회개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0년 9월 13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20년의 사역과 이스라엘의 회개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7장 1-4절 |
| 함께 읽은 말씀 | 전도서 3:11 (설교 중 인용: 사무엘상 7:6, 7:16 / 전도서 3:1-4 / 요한복음 15:5, 7) |
| 영상 | https://youtu.be/bBXVT54W9QQ (설교 약 35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언약 깨·은 어깨·학계"→언약궤, "기란 야림의 암이나 답"→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발과 서다 롯"→바알과 아스다롯, "홉니와 비너스"→홉니와 비느하스, "키프러스 11장"→히브리서 11장) 성경 본문(개역개정)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2020년 영상이라 자막 품질이 낮은 구간이 있습니다. 뜻이 분명하지 않은 대목은 억지로 채우지 않고 뜻이 통하는 범위만 정리했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이상한 두 가지 | 언약궤를 20년간 방치했다. 그런데도 사사 시대에 전무후무한 회개와 부흥이 일어났다. |
| ② 방치 | 벧세메스 사건 뒤 언약궤를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두고 돌아보지 않았다. 실로도 재건하지 않았다. 그동안 바알과 아스다롯을 좇았다. |
| ③ 탄식 | 20년 뒤 온 이스라엘이 예레미야애가처럼 탄식하며 울면서 하나님을 찾았다. |
| ④ 사무엘 | 전쟁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사. 그런데 어떤 사사도 이루지 못한 부흥의 통로가 되었다. |
| ⑤ 20년의 사역 | 해마다 벧엘·길갈·미스바를 돌며 말씀을 가르쳤다. 성경이 길게 기록하지 않은 숨겨진 사역이다. |
| ⑥ 첫째 요청 |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라. 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한 우상(풍요·번영·성공)을 제거하라. |
| ⑦ 간증 | 모태신앙인데 하루 1시간 이상 성경을 읽은 적이 평생 한 번도 없었다는 한 교인의 고백. |
| ⑧ 기다리심 | 가득 찬 내 시간에 하나님 계실 자리가 없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 밖에 서신 주님. 20년을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하나님. |
| ⑨ 둘째 요청 |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만 섬기라. 미스바에서 물을 붓고 종일 금식한 뜻. |
| ⑩ 부흥의 때 | 세월이 지난다고 저절로 오지 않는다. 말씀이 내 생각과 마음과 관심을 사로잡을 때 온다. 사무엘의 유일한 무기는 말씀이었다. |
| ⑪ 성경 읽기 | 올해 남은 석 달 보름, 성경 일독을 응원한다. 목사님이 성경을 읽으며 경험한 은혜. |
| ⑫ 때 | 전도서 3장. 하나님이 코로나의 때를 주셨다. 보여 주신 뜻과 감추어 두신 뜻. |
| ⑬ 결론 | 지금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상을 제거할 때다. 참 신앙인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는 사람이다. |
3. 결론 — 지금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다
하나님은 왜 이런 때를 주셨는지 그 처음과 끝은 감추어 두셨지만,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말씀으로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목사님은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를 거듭 물으며 이렇게 답하셨다.
- 지금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다. 물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붓듯이 나의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부어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을 때다.
- 지금은 우상을 제거할 때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돌아보며 20년간 내 삶을 채워 왔던 우상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할 때다. 지금까지 나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바알과 아스다롯을 추구했던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 나는 지난 10년간, 지난 세월 동안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까?" 하고 돌아보며 내 삶을 채웠던 우상들을 제거하고 쫓아내는 회개의 시간이다.
- 지금은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는 때다. 하나님이 그런 때를 우리에게 주셨다.
맑은 가을날의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우리 마음에 있다. 하나님이 그런 때를 허락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측량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하신 말씀이 있다. 지금은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때다. 그 어느 때보다 내 삶을 돌아보며, 하루의 시간 가운데 나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정말로 하나님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신지를 돌아보아야 할 때다.
포도나무와 가지
-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예수님을 떠나서 맺은 수많은 열매는 다 헛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맺은 열매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열매다.
- 주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이루게 될 것이다."
-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다.
신앙이 정말 좋은 사람
- 신앙이 정말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 진짜 신자다.
-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고 기도한다.
- 성경 읽고 기도하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종일토록 묵상했던 그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있어서,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사업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직장 일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복이다.
목사님은 이 은혜와 복을 이번 한 주간에도 풍성하게 주시기를, 말씀이 살아서 그 말씀을 중심으로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되는 복을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에 주시기를 구하며 설교를 맺으셨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이 설교에서는 끝에 회중에게 기도 제목을 따로 나누어 주지 않으셨다. "말씀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시고 바로 목사님이 마무리 기도를 드리셨다.
마무리 기도의 요지
- 하나님은 모든 때를 섭리하시고 정하시는 분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섭리 가운데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고 선언하셨다. 이것이 왜 아름다운 일인지, 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인지 우리가 분별할 수 없도록 숨겨 두셨지만, 믿음으로 이때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셨고 이때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는다.
-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부흥의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구한다. 내 안을 차지하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보게 해 주시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구한다.
- 하나님 앞에 나와 물을 쏟아붓듯이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은혜를 이번 한 주간 주시기를 구한다.
- 전쟁하고 정착하고 집을 짓느라 사사 시대 300년 동안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고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살아가던 이스라엘에게 놀라운 회개의 은혜, 부흥의 은혜를 주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드린다.
-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떠나서 내가 이룬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지는, 그냥 없어지는 쓰레기와 같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직장에서, 일터에서, 사업체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일은 하나님 나라의 보화와 같이 우리의 영광이요 감사가 될 것을 믿는다. 그런 삶을 살도록 은혜를 구한다.
- 이번 한 주간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이 내 삶의 변두리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 내 삶의 중심에 계셔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7:1-4)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에서 함께 다룬 6절과 15-16절도 아래에 덧붙였습니다.
| 구절 | 내용 |
|---|---|
| 7:1 |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했다. |
| 7:2 |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 오래 있었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다. |
| 7:3 |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실 것이다." |
| 7:4 |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다. |
| (7:6) |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 종일 금식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렸다. |
| (7:15-16) |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일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상한 일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20년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둘째, 언약궤를 20년간 방치했는데도 사사 시대에 전무후무한 이스라엘의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사 시대는 300년에서 350년 정도 되는 기간이다. 사사 시대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 시대를 통틀어서도 이렇게 큰 부흥이 일어났던 적은 손에 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이런 부흥은 교회의 역사에서 굉장히 드문 일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건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6-2. 20년간 방치된 언약궤
- 하나님의 언약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영광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 언약궤가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왔다.
-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를 정말로 기뻐하고 그 언약궤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야 마땅하다.
-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벧세메스의 사건을 경험하고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골짜기에 있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한다.
- 실로를 재건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실로가 파괴되었고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약궤가 돌아왔으면 이스라엘의 중심에 다시 언약궤를 모시고 성막을 다시 세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 놀랍게도 언약궤가 돌아왔지만 언덕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방치해 두고 돌아보지 않았다.
사실은 20년이 아니다
- 목사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실은 20년간 방치한 것이 아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80년간 언약궤를 방치해 두고 그냥 지냈다.
- 그 방치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살았는가. 사무엘이 말한 대로 바알과 아스다롯을 추구하면서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뜻밖의 일이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다
- 언약궤에 대한 무관심은 곧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 무관심이 1~2년이 아니라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 그런데 신기하게도 20년이 지난 뒤에, 이스라엘 역사에서 굉장히 드물게 온 이스라엘이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한다.
6-3. 온 이스라엘이 탄식하며 울었다
- 본문 2절의 "사모했다"는 말을 목사님은 영어 단어 '라멘트(lament)' 로 설명하셨다. 예레미야애가처럼 탄식하며 우는 것이다.
-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면서, 성전의 파괴를 보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서 울 수밖에 없었던 간절한 울부짖음이 있다. "하나님,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고 하나님 앞에서 피를 토하듯이 울부짖는 것이다. 본문은 그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하셨다.
- 20년이 지난 뒤, 미스바의 회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스라엘 온 족속이 하나님 앞에 나와 탄식하며 운다.
"하나님, 저희가 하나님을 무관심하게 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방치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온 것을 회개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사사 시대의 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6-4. 부흥의 주역 — 평범한 사사 사무엘
이 부흥의 역사에 주역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 사무엘이다.
- 사무엘은 사사들 가운데 마지막 사사다. 사무엘의 일이 끝나면서 왕정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아마 삼손과 같은 시대에 살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 그런데 사무엘을 들여다보면 사사들 가운데 평범한 사사다.
- 히브리서 11장과 사사기에 기록된 사사들을 보면 하나같이 전쟁의 영웅이다. 쉽게 떠오르는 사사는 기드온, 입다, 삼손, 그리고 옷니엘, 에훗이다. 이들은 모두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훌륭한 사사, 전쟁의 용사요 영웅이다.
- 사무엘이 전쟁을 잘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사무엘에게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었다는 기록도 전혀 없다. 사무엘은 말 그대로 평범한 사사, 일반적인 사사다.
그런데 하나님은 300년이 넘는 사사 시대 가운데 그 어떤 사사를 통해서도 주지 않으셨던, 그 어떤 사사도 이루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회개와 구약 교회의 엄청난 부흥의 역사를 사무엘이라는 평범한 사사를 통해 이루신다.
목사님은 물으셨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어떤 일을 하셨기에, 사무엘은 어떤 사사였기에, 온 이스라엘이 애가를 부르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는 부흥의 은혜를 이루는 통로로 쓰임을 받았는가?
6-5. 숨겨진 20년의 사역 — 하나님의 말씀
답은 이것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다.
- 7장 맨 마지막 16절에 이런 말이 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무엇으로 다스렸는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면서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 해마다 순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가르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말했다.
사무엘의 나이
-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사무엘이 그들을 대신하여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사역을 시작했을 때가 서른 살쯤이라고 추측한다.
- 서른 살쯤에 사역을 시작해서 20년이 지나 미스바의 놀라운 회개 사건이 있었으니, 그때 사무엘의 나이는 쉰 살쯤 되었을 것이다.
- 자기 인생의 가장 젊고 왕성한 시기 20년 동안 사무엘은 사역했다. 무엇으로 사역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아다니며 전했다. 1~2년을 전한 것이 아니다. 5년, 10년을 전한 것이 아니다. 20년 동안의 숨겨진 사역이 있다.
이스라엘의 마음에 깔려 있던 쓴 뿌리
- 언약궤에 대한 무관심,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하나님에 대한 쓴 뿌리가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한번 믿고 나갔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서 우리 아버지와 형제와 자매가 죽었다." 실패한 일을 두고 하나님을 향해 품은 쓴 뿌리와 무관심이 신앙의 열정을 식혀 버렸다.
- "두 번 다시 하나님을 위해 싸우러 나가지 않겠다. 싸우러 나가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 없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언약궤가 돌아왔을 때에도 우리를 치신 벧세메스 사건이 있지 않았느냐. 거룩하신 하나님은 가까이하기에는 좀 불편하다."
- 이 쓴 뿌리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다 깔려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냉담함과 무관심 속에 더 이상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려는 마음이 없어진 교회를 향해, 평범한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을 통해 20년간 일하셨다.
성경은 숨겨져 있는 사무엘의 사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20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이렇게 보아야 한다
온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배고픈 아이가 어머니에게 젖을 달라고 떼를 쓰며 울듯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하듯이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를 다시 돌아봐 주십시오" 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이 부흥의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 사역이 20년간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나와서 간구한다. "하나님께 우리가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갈급하게 사무엘을 찾아와 묻는 그들에게 사무엘이 한 말씀은 두 가지다.
6-6. 사무엘의 첫 번째 요청 —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을 제거하라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을 제거하십시오."
목사님은 회중에게 물으셨다.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상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 지난 2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바알과 아스다롯이다.
- 우상은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꾼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는 것은 무엇을 섬겼다는 말인가
- 바알과 아스다롯이 약속하는 것은 풍요와 번영이다. 폭풍의 신이요 수확의 신이다.
- 사사 시대와 달리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마음에도, 나의 시간을 많이 사용하고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다. 풍요와 번영과 성공은 시대에 관계없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하루에 1시간씩"이라는 비유
- 어떤 사람이 대학생이든 청년이든 어른에게든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하루에 1시간씩은 텔레비전을 보십시오. 하루에 1시간씩은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원하는 프로를 꼭 보십시오. 하루에 1시간씩은 나가서 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십시오."
- 우리는 그 말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인터넷을 보고, 유튜브를 보고, 쇼핑을 하고, 만나서 수다를 떠는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면 내 삶이 좀 더 평안하고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서 우리는 그 일들을 편안하게 한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매일 1시간씩 기도를 하십시오. 매일 1시간씩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십시오. 매일 1시간씩 성경 공부를 하십시오"라고 할 때, 그것을 기쁘게 여기고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 자기의 시간을 채우지 않았다. 바알과 아스다롯으로 자기 시간을 채웠다. 번영이라는, 성공이라는, 형통이라는 신을, 우상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사람 | 하나님이 중심에 없는 사람 | |
|---|---|---|
| 하루의 시작 |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드린다. | — |
| 하루의 대부분 | 많은 시간을 직장과 회사에서 보낸다. | 똑같이 많은 시간을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사업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로 보낸다. |
| 마음 | 아침에 말씀하신 하나님이 마음의 중심에 계신다. 직장에 다니든 사업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은 이 직장에서, 내가 하는 사업을 통해, 나의 오늘 하루를 통해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를 생각하며 산다. |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 이런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 없이 그냥 그 일에 몰두하고 매몰되어 산다. |
- 후자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기럇여아림 골짜기에 가 계시듯이 하나님이 자기 삶의 중심에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 3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살아왔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았던 적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따로 있다."
- 그러므로 사사 시대 3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겼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아스다롯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가나안 땅에서 풍요롭고 안전하고 형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20년간의 사역을 통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지 않을 때에 우리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왔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6-7. 한 교인의 간증 — "하루에 1시간 이상 성경을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교회는 지금 함께 성경을 읽고 있다(자막에는 "성경 500도 글"로 들림). 한 교인이 주중 성경 공부 시간에 이런 간증을 했다고 목사님이 전하셨다.
"목사님, 이번에 그래도 일독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하루에 1시간 이상 성경을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억지로라도 일독을 하려고 읽는 가운데 제가 1시간 이상씩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모태신앙이고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자라도록 교육을 받았는데, 내가 자원하여, 전심으로 기뻐서 하나님의 말씀을 1시간 이상 읽은 적이 여태까지 평생에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1시간 이상씩 읽을 때에,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와 감동이 정말로 새롭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목사님은 다시 물으셨다.
-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아니면 바알과 아스다롯이 말하는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 내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중심에 있습니까?
-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를 살아갈 때, 젊은 시절을 살아갈 때, 나이가 들어 지금 살아갈 때 여러분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 하나님이 아닌 우상이 있다면 그 우상을 제거하십시오.
이것이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첫 번째 회개의 요청이다.
6-8. 가득 찬 삶에는 하나님이 계실 공간이 없다 — 그래도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말한다.
- 내 마음에 내가 가득 채워 놓은 것들이 있다. 하루 24시간을 가득 채워 놓은 것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 놓았을 때는 하나님이 들어와 계실 공간이 없다.
- 밥을 먹어야 한다. 급히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업무가 있고 그 뒤에도 할 일이 또 있다. 돌아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내 삶의 모든 시간이 그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은 저 구석에, 산등성이에 그냥 방치된 채로 계실 뿐이다. 나는 하나님께 한 번씩 눈길을 줄 뿐이다. "하나님이 저기 계시기는 계시는구나."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바알과 아스다롯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과 똑같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이 하신 말씀과 똑같다.
"내가 너희의 구주와 주님이지 않느냐. 내가 라오디게아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이지 않느냐. 그런데 왜 나를 너희 마음의 중심에서, 너희 삶의 중심에서 떠나게 하여 문 밖에 내버려 두고 있느냐."
하나님은 인내하시고 기다리신다
- 하나님은 참 신기하신 분이다. 이렇게 인내하시고 기다리신다.
-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해서,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거나 싸우고 다투는 일이 있으면 그 사람을 안 보려고 한다. 화해하려는 마음조차 없을 수 있다.
-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힘으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셨다. 블레셋의 온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셨다. 그럼에도 백성은 이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과 쓴 뿌리와 냉담함 가운데 하나님을 저 산골짜기에 놓아둔다.
- 그런데 하나님이 기다리신다. 1년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20년을 기다리신다.
- 그리고 그 기다리시는 가운데 은혜를 주신다. "아,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 가운데, 이런 환난 가운데, 이런 혼란 가운데 우리의 인생이 허비되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하신다.
- 2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며 기다리시다가, 백성이 전심으로 자원하여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할 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6-9. 사무엘의 두 번째 요청 —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만 섬기라
- 삶의 중심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내 삶과 마음의 중심에 들어오실 공간이 생긴다.
- 그런데 하나님을 모실 때에는 삶의 변두리에 모시지 말고 중심에 모셔야 한다.
- 그래서 사무엘이 두 번째로 하는 말이 이것이다. "너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라. 그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라."
미스바에서 한 두 가지 의미 있는 일 (사무엘상 7:6)
미스바에서 회개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참 의미 있는 일 두 가지를 한다.
① 물을 길어 하나님 앞에 부었다
- 6절에 보면 미스바에 모여서 물을 길어 하나님 앞에 붓는다. 길어 온 물을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다 부어 버린다.
-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나님, 이제는 이 물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붓듯이 나의 모든 삶을, 나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 앞에 다 쏟습니다. 물을 다 부어 버리듯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는 일에 저의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 버립니다."
② 종일 금식했다
- 20년 사역의 열매가 미스바의 회개 운동으로 나타난다. 그날 모여서 이스라엘 백성이 종일 금식한다.
-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하나님, 20년간 허비하면서 젊은 시절을 다 보냈습니다. 그 죄를 회개합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남은 날 동안 저를 얼마나 살게 하실지 알 수 없으나, 물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붓듯이 제 삶의 모든 시간을, 제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다 쏟겠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좋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죽는데, 하나님,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이 미스바에 있었던 회개의 열매다.
6-10. 이런 부흥은 언제 오는가 — 말씀이 나를 사로잡을 때
- 이렇게 되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가.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 그러면 20년의 세월이 지나면 이런 부흥의 은혜가 자동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다. 300년이 지나도 회개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다.
- 기드온과 입다와 삼손과 같은 전쟁의 영웅, 그런 지도자가 나왔음에도 이러한 회개 운동은 이스라엘 역사에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면 이런 놀라운 부흥을 하나님은 언제 주시는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 그 말씀이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과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은혜를 주실 때에, 하나님은 이런 부흥의 은혜를 교회에 주신다.
사무엘의 유일한 무기
- 사무엘은 다른 사사들에 비해 그렇게 강하지 않다. 뛰어나지 않다. 전쟁에 능하지 않다.
- 사무엘에게 있었던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가지고 있는 신자,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신자는 이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반드시 사용하신다.
- 사무엘이 목숨을 걸고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생명이다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렸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는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며 거룩한 교회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굳게 붙잡고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하셨다.
6-11. 성경 읽기 — 남은 석 달 보름, 그리고 목사님의 경험
일독을 응원한다
- 지금은 9월 중순이다. 올해를 마치기까지 석 달 보름이 남았다.
- 성경을 일독하기로 결심한 분들을 강력하게 응원하고 권한다. 석 달 보름이면, 마음을 다하고 관심을 다해 말씀을 읽으면 충분히 일독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어떤 은혜와 감동이 있는가. 앞서 그 집사님이 이야기한 대로,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분들은 그 은혜와 감동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족 카톡방에 쓴 이야기
목사님도 이번에 작정해서 성경을 쭉 읽으며 경험하는 것이 있다고 하셨다. 성경을 읽는 유익을 가족들과 나누다가, 가족 카톡방에서 조카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삼촌이 신앙생활 하다 보니까 발견한 게 있는데, 신학 서적과 경건 서적을 많이 읽으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지식이 견고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느끼는 감동이 성경에 있다."
신학 서적을 통해 얻는 감동과 성경책을 읽으면서 얻는 감동은 뚜렷이 구별되고 참 다르다고 하셨다.
"내 문제의 답"을 찾으려 읽지 말고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로 읽으라
- 목사님은 말씀을 읽는 가운데,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하고 간구하던 것들이 성경을 읽는 중에 그냥 확 들어왔다고 하셨다.
-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찾는 문제의 답이 뭘까"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은혜가 별로 안 된다.
- 성경을 읽을 때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지?" 그것을 가지고 읽는 것이다.
- 최근에 사도행전을 쭉 다 읽으셨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의 관심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뭘까"였고, 그 관심으로 쭉 읽었다.
- 그런데 읽다 보면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사도행전을 이해하려고 읽었는데, 내가 가지고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성령님께서 그냥 답을 딱 주신다. 흔들림이 없는 답을 딱 주신다.
- 그것이 성경을 읽는 신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다.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계속 읽는다
-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계속 읽는다. 은혜와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성경을 계속 읽는 사람은 경건 서적이나 신학 서적을 잘 안 읽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받는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 "어쨌든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딱 들어와서 나를 딱 사로잡고 나를 움직일 때, 그때 하나님께서 내 삶의 중심에 계셔서 나의 삶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반드시 쓰십니다." 그 기쁨과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셨다.
6-12. 전도서 3장 — 하나님이 주신 '코로나의 때'
목사님은 전도서 3장을 스크린에 띄우고 읽으셨다. 11절을 말씀하기 전에 하나님은 전도서 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전 3:1-4의 내용을 읽으심).
-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
-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내 삶에 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회중과 함께 전도서 3:11 낭독)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 하나님은 모든 때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하셨다.
-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코로나의 때를 주셨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한 방식으로 하나님은 이 코로나의 때를 아름답게 하고 계신다.
- 그런데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지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도록 하셨다.
보여 주신 뜻과 감추어 두신 뜻
분명한 것이 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뜻이 있고,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뜻이 있다.
| 내용 | |
|---|---|
| 보여 주신 뜻 | 지금은 코로나의 때다. 지금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다. 하나님 앞에 마음껏 나와 예배드릴 수 없는 때를 하나님이 정하시고 이때를 지나게 하신다. |
| 감추어 두신 뜻 | 왜 이런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의 어떤 섭리 가운데 하셨는지. 그 시종(처음과 끝)을 우리가 알 수 없도록 하나님이 감추어 두셨다. |
목사님은 그날 아침의 마음을 나누셨다. 이렇게 좋은 가을날, 예배당에 오기 전에 하늘을 보면서 "예배드리기에 너무 좋은 날씨다. 하나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기에 너무 좋은 오늘 날씨인데, 아니, 왜 이런 어려운 때를 주셨습니까?" 하고 하늘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이때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은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강력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어지는 내용은 위 3장 '결론' 참조)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오기까지 (사무엘상 4~6장)
| 순서 | 사건 | 성경 |
|---|---|---|
| ① |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 약 4천 명이 죽었다. 장로들이 실로에서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으나 다시 크게 패해 보병 3만 명이 죽었다. | 삼상 4:1-10 |
| ② | 언약궤를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다.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의자에서 넘어져 죽었다. | 삼상 4:11-18 |
| ③ | 블레셋이 궤를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 두었으나 다곤 신상이 궤 앞에 엎드러져 부서졌다. 궤가 옮겨 가는 성읍(아스돗, 가드, 에그론)마다 독한 종기의 재앙이 임했다. | 삼상 5장 |
| ④ | 궤가 블레셋 땅에 일곱 달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젖 나는 소 두 마리가 끄는 새 수레에 궤를 실어 보내자 소들이 곧바로 벧세메스로 갔다. | 삼상 6:1-12 |
| ⑤ | 벧세메스 사람들이 기뻐하며 제사를 드렸으나,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본 까닭에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다. 그들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하며 기럇여아림에 사람을 보내 궤를 가져가 달라고 했다. | 삼상 6:13-21 |
| ⑥ |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다. | 삼상 7:1 |
- 설교의 "블레셋의 온 도시를 쑥밭으로 만드시고"는 ③을, "언약궤가 스스로 돌아왔다"는 ④를, "벧세메스 사건"은 ⑤를 가리킨다. 설교에서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은 가까이하기에 불편하다"고 여겼다고 하신 것은 삼상 6:20의 반응과 이어진다.
- 벧세메스에서 죽은 사람의 수(삼상 6:19)는 성경 사본과 번역본에 따라 "칠십 명" 또는 "오만 칠십 명"으로 다르게 전해진다.
실로의 파괴
실로는 여호수아 때부터 성막이 있던 곳이다(수 18:1). 사무엘상 4장은 실로가 파괴되었다고 직접 적지는 않는다. 그러나 훗날의 성경이 "실로의 성막을 떠나셨다"(시 78:60), "내가 실로에 행한 것을 보라"(렘 7:12-14, 26:6)고 말하고, 이후 성막과 제사장들이 놉과 기브온에 나타나는 것(삼상 21:1, 대하 1:3)을 근거로, 이 전쟁 무렵 블레셋이 실로를 파괴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교에서 "전쟁에서 실로가 파괴되었다"고 하신 배경이다.
"20년"과 "80년"
- 본문의 20년(삼상 7:2)은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모하여 미스바에 모이기까지의 기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궤는 그 뒤에도 계속 기럇여아림에 있었고,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뒤에야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삼하 6장, 대상 13장·15장). 다윗 자신이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대상 13:3)고 말했다.
- 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문 전체 기간은 성경에 숫자로 적혀 있지 않다. 사무엘의 남은 사역 기간과 사울의 통치 기간(행 13:21은 40년)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대략 수십 년에서 100년 안팎까지 견해가 갈린다. 설교의 "80년"은 그 범위 안의 어림값이다.
사사 시대의 길이
설교에서는 사사 시대를 300~350년으로 말씀하셨다. 입다가 "이스라엘이 이 땅에 거주한 지 삼백 년"(삿 11:26)이라고 한 말과 왕상 6:1의 연대를 따르는 전통적 계산이 이와 같다. 출애굽 시기를 더 늦게 보는 학자들은 사사 시대를 약 150~200년으로 짧게 계산하기도 한다.
미스바 이후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에 블레셋이 쳐들어왔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으로 번제를 드리며 부르짖자 여호와께서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이겼다. 사무엘은 돌을 세워 "에벤에셀(도움의 돌),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했다(삼상 7:7-12). 이 승리는 군사적 지휘가 아니라 기도와 하나님의 개입으로 얻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사무엘을 전쟁 영웅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의 사람으로 보는 설교의 설명과 맞닿는다.
2020년 9월의 상황
설교가 전해진 2020년 9월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교회가 평소처럼 한자리에 모여 예배드리기 어려웠던 때다. 설교의 "하나님 앞에 마음껏 나와 예배드릴 수 없는 때",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이 상황을 가리킨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기럇여아림 | '숲의 성읍'이라는 뜻.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12~15km 떨어진 산지 성읍으로,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에 있다. 본래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 가운데 하나였다(수 9:17). 본문 1절은 아비나답의 집이 "산(언덕)"에 있었다고 적는다. |
| 벧세메스 | '태양의 집'이라는 뜻. 블레셋 땅과 유다 산지 사이 소렉 골짜기에 있는 성읍으로, 제사장들에게 준 성읍이다(수 21:16). 블레셋에서 돌아온 궤가 처음 닿은 곳. |
| 실로 | 에브라임 산지의 성읍. 여호수아 때부터 엘리 때까지 성막과 언약궤가 있던 이스라엘의 예배 중심지. |
| 미스바 | '망대, 파수하는 곳'이라는 뜻. 베냐민 땅에 있으며 예루살렘 북쪽 약 12km의 텔 엔 나스베로 보는 견해가 많다(다른 견해도 있다). 이스라엘이 자주 모이던 집회 장소다(삿 20:1, 삼상 10:17). |
| 벧엘·길갈 | 미스바와 함께 사무엘이 해마다 순회한 곳(삼상 7:16). 모두 이스라엘 중부 산지와 요단 골짜기 쪽에 있어 서로 멀지 않다. 사무엘의 집은 라마에 있었고 거기서도 다스리며 제단을 쌓았다(삼상 7:17). |
| 블레셋 | 지중해 연안 평야에 살던 민족.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다섯 성읍이 중심이었다(삼상 6:17). |
| 예루살렘 | 다윗이 왕이 된 뒤 수도로 삼고 언약궤를 옮겨 온 곳(삼하 5~6장). |
| 라오디게아 |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 서남부)의 부유한 상업 도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 교회가 있던 곳(계 3:14-22).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사무엘 |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아들. 어려서부터 실로에서 엘리 밑에서 자랐고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다"(삼상 3:20).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이며 제사를 집례했다. 훗날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정 시대를 열었다. 사역을 시작한 나이와 미스바 때의 나이는 성경에 적혀 있지 않으며, 설교의 "서른 살쯤, 쉰 살쯤"은 목사님이 추측이라고 밝히신 어림이다. |
| 엘리, 홉니와 비느하스 | 엘리는 실로의 제사장이자 사사(삼상 4:18).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를 멸시하고 악을 행했으며(삼상 2:12-17), 궤를 빼앗기던 날 함께 죽었다. |
| 아비나답과 엘리아살 | 기럇여아림 사람. 그의 집에 궤를 두었고 아들 엘리아살이 구별되어 궤를 지켰다. 다윗이 궤를 옮길 때 수레를 몰던 웃사와 아효도 아비나답의 집 사람이다(삼하 6:3). |
| 기드온 | 300명으로 미디안 대군을 물리친 사사(삿 6~8장). |
| 입다 | 암몬을 물리친 길르앗 출신 사사(삿 11~12장). |
| 삼손 | 블레셋과 싸운 나실인 사사(삿 13~16장). 사사 시대 말기 블레셋이 압제하던 때의 인물이어서 사무엘과 시기가 겹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
| 옷니엘 | 첫 사사. 갈렙의 조카(또는 아우)로 메소보다미아 왕을 이겼다(삿 3:7-11). |
| 에훗 | 왼손잡이 사사.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했다(삿 3:12-30). |
| 히브리서 11장의 사사들 | 히 11:32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을 든다. |
| 예레미야 | 유다 말기의 선지자. 주전 586년 예루살렘과 성전이 바벨론에 멸망하는 것을 겪었다. 예레미야애가는 전통적으로 그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
| 다윗 | 이스라엘의 둘째 왕.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언약궤를 옮겨 왔다. |
7-4. 문화
언약궤(법궤)
-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으로 만들고 안팎을 금으로 입힌 상자다. 길이 약 110cm, 너비와 높이 약 70cm 정도다(출 25:10-22).
-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었고(히 9:4는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언급한다), 뚜껑인 속죄소 위에 두 그룹(천사 형상)이 있었다.
- 성막 가장 안쪽 지성소에 두었으며, 하나님이 그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임재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설교에서 "언약궤에 대한 무관심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하셨다.
바알과 아스다롯
- 바알: 가나안의 대표적인 남신. '주인'이라는 뜻이며 비와 폭풍, 곧 농사의 풍작을 주관하는 신으로 섬겨졌다. 비가 와야 농사가 되는 가나안 땅에서 바알 숭배는 곧 풍년과 번영을 구하는 신앙이었다.
- 아스다롯: 가나안의 여신(단수는 '아스다롯' 또는 '아스도렛'). 풍요와 다산, 전쟁의 여신으로 섬겨졌다.
-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는 말을 되풀이한다(삿 2:13, 10:6). 설교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이 약속하는 것은 풍요와 번영"이라고 하신 것이 이 배경이다.
물을 붓는 일 (삼상 7:6)
구약에서 여호와 앞에 물을 붓는 의식은 이곳 외에 거의 나오지 않아 그 뜻을 두고 여러 설명이 있다. 마음과 영혼을 남김없이 쏟아 놓는 참회의 표시로 보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성경에는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애 2:19),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시 62:8) 같은 표현이 있고, 한나도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삼상 1:15)이라고 했다. 설교의 풀이도 이 방향이다.
금식
음식을 끊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 구약에서 금식은 죄를 슬퍼하며 자신을 낮추는 회개의 표시로 자주 나온다(욜 2:12, 욘 3:5, 느 9:1).
순회하며 다스림
사사는 재판하고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였다. 사무엘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해마다 여러 성읍을 돌며 재판하고 가르쳤다. 왕도 수도도 없던 시대에 흩어진 지파들을 말씀으로 묶는 방법이었다.
탄식(애가, lament)
본문 2절의 "사모하니라"로 옮겨진 히브리어 동사는 '애곡하다, 탄식하며 울다'라는 뜻을 지닌 말로 설명된다. 그래서 여러 영어 성경이 이 구절을 "lamented after the LORD"(여호와를 향해 애곡했다)로 옮긴다. 예레미야애가의 영어 이름이 Lamentations(탄식들)이다. 설교에서 '라멘트'를 예레미야애가와 연결하신 배경이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사사(士師) | 여호수아가 죽은 뒤부터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하나님이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스리게 하신 지도자. 히브리어 '쇼페트'는 '재판하는 사람,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 회개(悔改) |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 구약의 '돌아오다'(히브리어 '슈브')가 이 뜻이다. 본문 3절은 회개를 "제거하고(버림) … 향하여 … 섬기라(돌아섬)"는 두 방향으로 말한다. 설교의 두 가지 요청이 여기서 나왔다. |
| 부흥(復興) | 식었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는 것. 설교에서는 사람이 일으키는 행사가 아니라 말씀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설명하셨다. |
| 전심(全心) | 온 마음. 나누어지지 않은 마음.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
| 우상 | 눈에 보이는 신상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리에 놓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 사도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골 3:5)라고 했다. |
| 겸하여 섬김 |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것도 함께 섬기는 것.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왕하 17:33).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하셨다. |
| 쓴 뿌리 | 마음속에 자리 잡은 원망과 상한 감정.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히 12:15)에서 온 표현이다. |
| 라오디게아 교회와 문 밖의 주님 | 주님은 이 교회를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고 책망하시고(계 3:15-16) 이렇게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다. |
| 목마른 사슴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
| 성령의 검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설교에서 사무엘의 유일한 무기를 말씀이라고 하신 표현의 배경이다. |
| 말씀으로 거듭남 |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
| 섭리(攝理) |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과 역사, 각 사람의 삶을 지혜와 선하심으로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일. |
| 보여 주신 뜻과 감추어 두신 뜻 |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하나님이 왜 어떤 일을 허락하시는지는 다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말씀으로 알려 주셨다는 구분이다. |
| 시종(始終) | 처음과 끝. 전도서 3:11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 |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 전 3:11. 사람은 눈앞의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영원한 것, 곧 하나님을 찾도록 지어졌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
| 포도나무와 가지 | 요한복음 15:1-8.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 신자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
| 긍휼(矜恤) | 불쌍히 여겨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 |
| 모태신앙 |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신앙. |
| 일독(一讀) |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는 것. |
| 큐티(QT) | Quiet Time. 날마다 정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경건 생활.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2020년 영상의 자동 자막은 인식 오류가 많아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 성경 낭독 부분을 성경 본문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교회가 함께 하던 성경 읽기 운동의 이름은 자막에 "성경 500도 글"로 들립니다. '성경 500독'으로 짐작되지만 자막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어 본문에는 "함께 성경을 읽고 있다"로 적었습니다.
- 자막이 불분명하여 문맥으로 옮긴 대목이 있습니다. "아마 삼손과 같은 시대에 살았을 것"(자막 "삼성각"), "예수님을 떠나서 맺은 열매는 다 헛것"(자막 "흑 것"), "거룩하신 하나님은 가까이하기에는 좀 불편하다", 가족 카톡방의 인원수(자막 불명확하여 생략), 마무리 기도 가운데 "전쟁하고 정착하고 집을 짓느라" 앞부분입니다.
- 언약궤가 방치된 전체 기간 "80년"은 자막에 "80년", "8 10년"으로 들리며 80년으로 옮겼습니다. 이 기간은 성경에 숫자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계산 방식에 따라 견해가 갈립니다(7-1 참조).
- 사무엘이 순회하며 다스렸다는 말씀은 설교에서 "7장 16절"로 소개되었고, "사는 날 동안 다스렸다"는 앞부분은 15절입니다.
- 사무엘의 나이(서른 살쯤, 쉰 살쯤)는 목사님이 추측이라고 밝히신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숫자가 아닙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사사 시대의 길이, 미스바의 위치, 벧세메스에서 죽은 사람의 수 등은 학자와 사본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